《태평천하》는 제목부터가 역설이다. 작품이 그려내는 현실은 결코 ‘태평’하지 않다. 세상이 흔들려도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의 질서에 매달리고, 몰락이 눈앞에 와도 체면과 재산에만 집착한다.
일제강점기의 불안한 공기가 조선을 뒤덮던 1930년대 말, 대지주 윤직원과 그의 가족들은 스스로를 양반이라 부르며 안온한 삶을 이어가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태평’은 이미 시대의 종말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나 다름없다.
채만식은 그들의 삶을 잔인할 만큼 명료하게 비춘다. 무너져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괜찮다며 웃어넘기는 이들의 태도 속에서 그는 부끄러움과 위선의 얼굴을 포착한다. 그의 문장은 익살스럽고 경쾌하지만, 그 웃음 뒤엔 현실을 꿰뚫는 냉철한 비판이 숨겨져 있다.
《태평천하》는 오래된 풍자가 아니다.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현실의 초상이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과거의 체면과 허세를 붙드는 인간의 본성, 세상이 무너져도 자신만의 안락한 ‘태평’을 지키려는 마음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 않나.이 작품은 그 허상을 비웃고, 동시에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세상 위에 서 있는가?”
Back to Top